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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중심 문화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기

by 파피용1 2025. 6. 21.

비건이라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동물권, 환경 보호, 건강, 종교, 혹은 단순한 호기심. 하지만 그 이유가 아무리 명확하고 단단하더라도, 육식이 일상이고 문화이며 관습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일본, 브라질, 미국 남부, 중동 등 다양한 나라와 지역에서 육식은 단지 음식 선택의 문제를 넘어, 가족의 전통이고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이며 때로는 국가적 자부심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고기를 안 먹는 선택을 넘어, 주변의 시선, 구조의 불편함, 정체성의 충돌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육식 중심 문화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주하는 현실과 그 속에서 만들어진 대안들, 그리고 이 여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육식 중심 문화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기
육식 중심 문화권에서 비건으로 살아가기

 

 

1.비건으로 산다는 것이 가족 문화 속에서 외부인이 되는 경험이라면

육식 중심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갈 때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은 음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음식을 둘러싼 인간관계와 사회적 코드이다. 많은 이들이 비건을 결심하고 나서 곧바로 마주하는 첫 번째 벽은 가족이다. 특히 아시아나 남미 문화처럼 가족 중심의 식사 문화가 강한 사회에서는, 고기를 거부하는 선택이 단순한 개인적 취향이 아닌 가족의 정체성을 흔드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한국을 예로 들어보자. 고기 없이 상을 차리는 것이 예외적인 상황으로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비건은 때로 투정, 유난,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너 하나 때문에 다 못 먹어라는 말은 비건이 가족 식사에서 외부인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전형적인 순간이다. 게다가 제사, 명절, 회식처럼 음식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사회적 의례에서는 함께 먹는 것 자체가 공동체를 확인하는 행위로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비건은 때때로 연대 거부자 혹은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취급된다.

그렇기에 이들의 선택은 단지 채식 식단을 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감정 노동으로 이어진다. 왜 안 먹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 몸에 나빠 같은 질문은 친근함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건에게는 정당성을 증명해야 하는 질문처럼 느껴질 수 있다.

결국 육식 중심 사회에서 비건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비주류로서의 존재감을 감내하는 일이다. 식사 자리에 앉는 순간마다, 메뉴를 고를 때마다, 단체 채팅방에서 배달 음식을 정할 때마다 비건이라는 정체성을 말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하기가 매번 논쟁이나 해명, 또는 외면으로 이어질 수 있기에, 비건의 일상은 종종 고독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2.비건으로서의 일상은 불편함을 창의적 대안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육식 중심 문화에서 비건으로 살아가는 삶은 종종 무엇을 못 먹는다는 결핍의 언어로 표현되지만, 사실 그 속에는 새로운 창의성과 적응의 기술이 자라난다. 기존의 문화와 제도에 의해 형성된 식생활 구조는 비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만, 그렇기에 더 많은 탐색, 실험, 질문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김치에는 젓갈이, 국물에는 멸치나 소고기 육수가 들어간다. 표면적으로는 채소 중심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동물성 재료가 곳곳에 숨어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비건은 단순히 음식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재료와 조리법을 재해석하고,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생활 기술자가 된다.

김치를 예로 들면, 채수로 감칠맛을 내고, 템페나 표고버섯, 된장 등을 활용해 감칠맛과 깊이를 살릴 수 있다. 단순히 젓갈을 빼는 것이 아니라, 비건 김치만의 풍미와 철학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이는 단지 음식뿐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창조적 실천이기도 하다.

이러한 창의성은 외식이나 사회적 모임에서도 발휘된다. 채식 옵션이 없는 메뉴판 앞에서 여러 반찬을 조합해 스스로 한 끼를 만들어내거나, 사장님께 직접 요청해 숨겨진 비건 가능 메뉴를 찾아내는 것도 비건들의 일상 기술이다. 더 나아가,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나누고, 비건 제품 리뷰를 공유하며 생태계 자체를 확장하는 실천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육식 중심 사회에서의 비건은 단순히 소비자나 소외된 소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삶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적극적인 창조자이다. 불편함은 회피의 이유가 아니라, 변화의 자극이 되고, 이로 인해 더 넓은 윤리적 상상력과 연결의 가능성이 자라난다.

 

3.사회적 구조 안에서의 비건 실천은 곧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정치적 행위이다

비건으로 살아가는 것은 개인의 식습관 변화 그 이상이다. 특히 육식이 정상성으로 자리 잡은 문화 속에서 비건이라는 선택은 기존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질문을 던지는 행위가 된다. 이 질문은 때로는 불편함을 낳고, 때로는 구조를 흔들기도 한다.

육식 중심 문화에서 고기 소비는 단지 식욕의 충족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 축산업, 식량 정책, 광고, 미디어, 교육까지 복합적으로 얽힌 사회 구조의 일부이다. 삼겹살 회식은 한국에서 단지 식사가 아니라 노동문화의 핵심이자 팀워크의 상징이며, 치킨과 맥주는 유희와 여가의 코드다. 이런 문화 안에서 나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말은 단지 식단의 변화가 아니라, 그 문화를 유지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선언이다.

이런 측면에서 비건은 불편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거부하거나, 학교 급식에서 대체식을 요구하는 일은 때로 예민하다는 말로 치부되지만, 실상은 기존의 시스템이 포괄하지 못한 목소리를 드러내는 민주적 실천이다. 비건이 많아질수록 기업은 대체육 개발에 투자하고, 학교는 채식 급식제를 도입하며, 마트는 더 많은 식물성 제품을 공급하게 된다.

즉, 비건은 시스템을 바꾸는 작은 균열의 시작점이다. 특히 육식 중심 문화일수록 이러한 실천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선택을 통해 사회가 놓친 질문을 되살리고, 소수자의 권리, 생명에 대한 존중,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비건은 정치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정치성은 소리 높여 외치는 운동이 아니라, 매일의 식탁에서 조용히 반복되는 윤리적 실천으로 구현된다. 먹지 않는 것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건 느리고 때로는 외로운 길일 수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진 변화의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