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은 단순한 식단이 아닌 윤리적 선택이다. 동물 착취에 반대하고, 환경을 보호하며, 공존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최근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새로운 질문들이 생겨나고 있다. 배양육, 인공지능 기반 식품 개발, 유전자 편집 식품 등 다양한 식품 기술들이 등장하면서, 우리는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윤리적인 먹거리'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기술은 정말 윤리적인가? 비건의 기준에 부합하는가? 첨단 기술은 동물권과 환경 보호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착취를 정당화하는가? 이 글에서는 첨단 식품 기술이 비건 윤리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본다.
1.배양육은 동물 착취 없는 대안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산업화의 얼굴일까
배양육은 살아 있는 동물을 도살하지 않고, 실험실에서 세포를 배양하여 만들어낸 고기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도덕적인 고기라 부르며, 비건 윤리에 가장 근접한 기술적 대안으로 꼽는다. 실제로 배양육은 도축 없는 단백질 생산,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 대규모 농장과 축사의 해체 가능성 등 여러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비건의 윤리는 단지 결과만이 아니라 생산 과정과 시스템 전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함한다. 배양육은 동물에게서 최초로 채취한 세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동물은 통증이나 스트레스를 경험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생명과 몸이 여전히 인간의 목적을 위해 도구화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일부 기술은 태아 소의 혈청을 성장배지로 사용하는데, 이 과정은 여전히 도살 산업과 연결되어 있다. 즉, 배양육이 동물 착취 없는 고기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많은 논란이 남아 있다.
또한 배양육 산업은 거대 자본이 선점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대부분의 시장은 국제 식품 기업, 제약 대기업, IT 자본의 투자에 따라 움직인다. 이 구조는 배양육이 새로운 산업 축산의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자연과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생명 통제, 생물학적 자산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배양육은 분명 기존 고기 산업에 비해 덜 해로운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비건 윤리, 즉 동물과 자연과의 수평적 관계 회복이라는 비전과 일치하는지는 여전히 질문이 필요한 지점이다. 비건이 단지 도축 없는 고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배양육을 소비하는 방식에도 깊은 성찰과 비판적 시선이 필요하다.
2.인공지능 기반 식품 개발은 다양성과 접근성을 넓히지만 윤리적 빈틈도 함께 커진다
AI 기반 식품 기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식품 개발에 있어 맛 조합, 영양소 설계, 알레르기 회피 식단 구성, 맞춤형 영양 조정 등 놀라운 기능을 수행하며, 비건 식품의 품질 향상과 접근성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예를 들어, AI는 콩, 완두, 곡물 등 식물성 원료를 조합하여 고기와 거의 유사한 식감을 구현하거나, 우유와 같은 맛을 내는 음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기술은 특히 대체 식품을 일상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의 비건 식품은 가격이 비싸고 맛이 제한적이라는 인식이 많았지만, AI는 이를 개선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비건 선택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알레르기나 특정 질병으로 인해 식단이 제한된 사람들에게 AI 기반 비건 식품은 실제적인 해방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기술에도 비건 윤리와 충돌하는 지점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편향성이다.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셋은 대부분 서구의 식습관, 영양 기준, 시장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며,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적 식단이나 제3세계의 식재료가 배제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는 비건 식품조차 서구 중심으로 표준화되는 새로운 식민주의적 경향을 낳는다.
또한, AI 기반 식품 기술은 대부분 대기업의 독점적 플랫폼과 결합되어 있다. 식품 개발, 유통, 마케팅까지 모든 과정이 몇몇 거대 기업의 손에 의해 통제되면서, 소규모 생산자나 전통 식문화를 기반으로 한 로컬 푸드 시스템은 위협받는다. 기술은 다양성을 확장할 수도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는 오히려 획일화를 가속화하고, 지역적 식권을 축소시킬 수도 있다.
비건 윤리는 단지 결과물을 윤리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누가 참여했고, 누가 배제되었으며, 누가 권력을 가졌는지를 함께 묻는 실천이다. AI가 만든 비건 식품이 정말 윤리적인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 속의 노동, 기술, 자본의 흐름을 함께 분석할 필요가 있다.
3.윤리적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동물권과 생태 정의를 함께 반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기술 자체를 중립적 도구로 간주한다. 그러나 어떤 기술도 사회적 맥락과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비건의 관점에서 기술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 기술이 생명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관계를 맺으려 하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동물을 안 죽였으니 윤리적이다, 고기를 대체했으니 착하다는 단순한 판단으로는 부족하다.
비건 윤리는 동물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 존재가 존중받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까지 고민한다. 이는 단지 죽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의 경험과 고통, 관계의 방식까지 포함하는 윤리다. 따라서 비건 윤리는 기술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만이 아니라, 어떤 관계의 전환을 만들어내는지를 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배양육을 통해 동물을 죽이지 않게 되더라도, 동물의 생체 정보나 유전자를 끊임없이 추출하고 산업화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착취의 구조가 될 수 있다. 또한, AI가 만든 비건 식단이 접근성을 높이더라도, 그것이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음식 문화를 획일화한다면 윤리적인 기술이라 보기 어렵다.
윤리적 기술은 단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도구여야 한다. 어떻게 동물을 안 죽이고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넘어서, 우리는 왜 고기를 이렇게까지 먹고 싶어 하는가?, ‘우리의 식탁은 누구를 배제하고 있는가?’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비건 운동은 기술 발전에 비판적으로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비건 윤리는 기술을 더 윤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지침이 될 수 있다. 동물권, 생태 정의, 식량 정의, 노동권을 포괄하는 기술이라면 그것은 비건 윤리에 부합하는 미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누구를 위한 기술인가?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기술은 도구지만, 어떤 사회를 만들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