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은 윤리, 환경, 건강을 위한 하나의 실천이자 철학이다. 최근 몇 년 사이, SNS와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비건을 실천하고 알리는 인플루언서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그들은 비건 레시피를 공유하고, 친환경 제품을 추천하며, 동물권과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비건 인플루언서’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다양한 이면들 역시 존재한다.
이 글에서는 비건 인플루언서 문화의 명암을 함께 살펴보며, 우리가 어떤 시선과 태도로 이 현상을 바라보고 참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1.윤리적 실천과 자기 브랜딩 사이에서 비건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
비건 인플루언서들은 자신의 실천을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고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 유튜브에서 비건 요리를 소개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그들의 콘텐츠는 수많은 이들의 비건 입문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비건 브이로그, 비건 하울, 제로웨이스트 챌린지 같은 콘텐츠는 젊은 세대에게 윤리적 소비를 보다 친근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이런 공유가 인기를 얻게 되면, 비건 실천은 윤리적 실천이라는 원래의 맥락을 벗어나 하나의 소비 가능한 콘텐츠이자 이미지로 변질될 위험도 있다. 실천의 진정성보다는, 브랜드 협찬이나 수익 창출을 위한 포장된 비건 라이프스타일이 우선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비건 화장품이나 지속가능 브랜드 제품을 소개하면서도 제품의 생산 과정, 노동 환경, 접근성 문제 등은 잘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SNS 플랫폼의 특성상 시각적인 미학과 자극적인 콘텐츠가 우선시되다 보니, 비건 실천이 지나치게 예쁜 이미지나 건강한 몸매, 깔끔한 식탁으로 표현된다. 이는 비건을 일종의 자기계발 콘텐츠로 만들거나, 소비자층에게 동경의 대상으로 비춰지게 하며 실질적인 문제의식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비건 인플루언서가 되는 과정에서의 자기 브랜딩은, 분명 전략적으로 필요한 선택일 수 있다. 문제는 이 브랜딩이 윤리와 가치보다 우선시될 때, 비건 운동 자체가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동물권과 환경, 식량 정의 같은 본질적 문제들은 콘텐츠의 후경으로 밀려나고, 비건이 곧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게 해주는 도구처럼 소비될 때, 우리는 윤리적 실천이 아닌 윤리적 소비주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2.소셜 미디어 속 비건 실천은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이상화하는가
비건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는 대체로 도시 중산층 이상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주로 등장하는 장면은 깔끔한 주방, 오가닉 마트, 정돈된 식탁, 그리고 조화롭게 구성된 채소 접시들이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은 종종 현실 속 많은 사람들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다.
비건이라는 윤리적 실천은 사실상 누구나 할 수 있는 삶의 태도이지만, SNS 속 비건은 시간적 여유, 경제적 여건, 미적 감각, 공간적 자원이 풍부한 사람의 전유물처럼 비춰질 수 있다. 저소득층, 장애인, 노동자, 농민, 이주민 등 다양한 삶의 층위는 콘텐츠 속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비건은 특정 계층만이 실천할 수 있는 고급 취향이나 선택 가능한 소비 행위로 오해받기도 한다.
더 나아가, SNS에서 이상화되는 비건 인플루언서의 몸과 외모 역시 건강, 아름다움, 슬림함과 연결된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들이 채식으로 얻은 건강한 몸과 맑은 피부는 비건 실천의 보상처럼 강조되지만, 이는 비건이 지향하는 윤리적 가치와는 무관한 결과물이다. 결국 몸의 건강함과 도덕적 우월함이 얽히면서, 비건이 또 하나의 자기계발 콘텐츠가 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게으르고 무지한 소비자로 낙인찍히는 구조가 생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SNS 속 비건 실천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주변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 속에서, 다양한 종교와 식문화, 건강상 제한을 가진 이들은 비건 실천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SNS는 이를 종종 비표준으로 다루고, 비건의 기준을 획일화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비건 인플루언서 콘텐츠의 힘은 크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힘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사회적 감수성과 비판적 인식이 필요하다. 누구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고 있는지, 어떤 현실이 미화되고 있는지, 그 콘텐츠가 어떤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태도가 요구된다.
3.지속 가능한 비건 인플루언서 문화는 진정성과 자기 성찰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건 인플루언서 문화를 어떻게 확장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 단순히 인플루언서를 비판하고 소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윤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콘텐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비건 인플루언서가 단지 제품을 판매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윤리적 신념을 바탕으로 한 삶을 투명하게 나누는 주체가 될 때, 그들의 콘텐츠는 설득력과 감동을 갖는다. 진정성은 완벽함이 아니라 과정의 솔직함과 시행착오의 공유에서 온다. 비건 실천이 언제나 성공적인 선택만이 아니라 때로는 어려움, 타협, 반성과 같은 감정의 결을 담고 있을 때,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적인 공감과 참여의 가능성을 갖게 된다.
또 하나는 연대다. 혼자만의 실천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과 배경의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콘텐츠 속에 담아낼 때, 비건 운동은 더 넓은 사회적 움직임이 된다. 예를 들어, 농민의 이야기, 노동자의 이야기, 이주민의 식문화, 장애인의 식사 환경 등을 조명함으로써, 비건 실천이 보다 포괄적이고 교차적인 윤리로 확장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자기 성찰의 지속성이다. 인기와 수익, 콘텐츠 조회수에 영향을 받기 쉬운 플랫폼 환경에서, 자신의 콘텐츠가 어떤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내가 소개하는 브랜드는 윤리적인가 내가 강조하는 건강함이 누군가를 소외시키는가? 나의 콘텐츠가 너무 이상화되어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태도는, 비건 인플루언서 문화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비건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실천을 통해 함께 더 나은 삶을 모색하려는 윤리적 시도이다. 인플루언서 역시 그 시도 안에서 고민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존재일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진실한 이야기와 연결의 가능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