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비건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식습관을 넘어 하나의 문화이자 철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강, 환경, 윤리적인 이유로 비건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막상 비건이 되고 싶어도 시작하기가 쉽지 않은 분들도 많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별 생각 없이 살아가던 평범한 일상 속에서 한 영상을 보고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 영상은 마치 제게 말을 거는 듯했고, 제 삶의 방향을 근본부터 바꾸게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계기 부터 시작해, 비건이 가져온 내면과 외면의 변화,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지속 가능한 비건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그 영상이 내게 말을 걸었다
모든 변화에는 결정적인 순간이 존재합니다. 제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주 평범한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유튜브를 아무 생각 없이 뒤적이던 중 우연히 클릭한 다큐멘터리 영상이었습니다. 주제는 축산업의 현실 이었죠. 처음에는 그저 정보성 콘텐츠 정도로 생각했지만, 영상이 진행될수록 제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좁고 어두운 철창에 갇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돼지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어미와 강제로 분리되는 송아지, 그리고 알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살아 있는 채로 분쇄기에 들어가는 병아리들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식탁 위 고기와 유제품들이 단지 맛과 편의를 위해 얼마나 큰 고통과 희생 위에 놓여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씹던 음식이 목에 걸리는 듯했고, 당장 식욕이 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에게 질문이 찾아왔습니다. 이 고통은 정말 정당한가?, 나는 단지 입맛을 위한 즐거움을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소비하는 것인가? 처음엔 피하고 싶은 질문이었지만, 피한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강해졌고, 결국 저는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줄여가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작한 것이 플렉시테리언 생활이었습니다. 처음엔 육류 섭취 빈도를 조금씩 줄이고, 두유나 콩고기, 비건 치즈 같은 대체 식품을 시도해봤습니다. 물론 초반엔 맛이 낯설고 실망하기도 했지만, 점점 입맛도 변했고 무엇보다도 내가 내 신념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가끔 먹던 고기가 점점 줄어들면서 결국 완전 비건을 향한 발걸음을 떼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영상 한 편이 내 인생을 바꿔놓은 전환점이 된 셈입니다.
2.몸보다 먼저 달라진 것은 마음
비건을 시작하면 몸이 가벼워지고, 피부가 좋아지고, 소화가 잘 된다는 이야기는 흔히 접합니다. 저 역시 그런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육류 섭취를 줄인 뒤로 속이 덜 더부룩해졌고, 아침에 눈뜨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으며, 무거운 피로감도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고 깊은 변화는 바로 ‘마음가짐’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연결감 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인간과 동물, 자연을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비건을 실천하면서부터는 이 모든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 시작했습니다. 소 한 마리, 닭 한 마리의 삶이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누군가의 생애였음을, 그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저의 일상과 행동에 스며들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변화는 사소한 것들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전엔 그냥 지나치던 길고양이에게 눈을 맞추고 안부를 건네며, 거리의 작은 잡초조차도 귀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타인의 고통에 더욱 민감해지고, 판단하기보다 먼저 공감하려는 태도가 생겼습니다. 그 결과 제 삶의 태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훨씬 부드러워졌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더욱 깊고 풍요로워졌습니다.
비건은 단순한 식단 조절이 아니라, 의식적인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엇을 먹고 소비할지, 누군가를 대할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습관이 자리 잡으면서, 삶 전반에 걸쳐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게 된 것이죠. 그 과정에서 저는 내면적으로 더 성숙해지고, 작은 변화가 큰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습니다.
3.지속가능한 선택으로서의 비건 , 완벽보다 중요한 의지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 완벽한 비건이 아닙니다. 외식을 할 때 메뉴 성분이 애매한 경우도 있고, 때로는 동물성 성분이 포함된 음식을 모르고 먹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꾸준한 의지라고 믿습니다.
지속 가능한 비건 생활을 위해 저는 완벽주의 대신 유연함을 택했습니다. 친구와의 외식 자리에서 비건 메뉴가 없으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자책하지 않고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여행지에서 비건 선택지가 제한적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며 계속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비건이란 여정이 혼자 걷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연결되고 서로 응원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힘은 막강합니다. 때로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시선도 있지만, 저는 처음 그 영상을 보고 느낀 충격과 다짐을 되새깁니다. 나는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진 삶을 원하지 않는다는 그 마음이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비건은 단순한 먹거리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태도,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오늘도 저는 이 길을 성실히 걸으며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작은 발걸음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분명 세상을 조금씩 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