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이 스며든다.나에게 그 순간은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되었다.무심코 연 옷장 앞에서, 산더미 같은 옷들 사이에서 입을 옷이 없다는 푸념을 하던 바로 그 날.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데도 만족스럽지 않을까? 그때부터였다.나는 점점 더 적게 가지기로 결심했고, 그 선택은 단지 물건의 수를 줄이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밀도를 다시 짜는 일이었다.
1.소유가 많을수록 오히려 불안해졌다
우리는 흔히 가지면 가질수록 풍요로워진다고 믿는다.좋은 집, 좋은 옷, 좋은 물건.이것들이 나를 채워주리라 생각했고, 실제로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아졌다.하지만 그 기분은 길어야 며칠, 짧으면 몇 시간 만에 사라졌다.그러고 나면 또 새로운 것이 필요해졌다.지속적인 소비는 어느 순간 습관이 되었고, 나는 점점 물건에 둘러싸인 채 살아갔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물건이 많다는 차원이 아니었다.물건이 많을수록 정리해야 할 시간도, 공간도, 에너지도 더 필요해졌다.눈에 보이는 것이 많으면 마음도 어지럽다.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시야에는 끝없이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있고, 그 속에서 나는 늘 피로했다.
게다가 물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유지하고 관리할 것들이 늘어나면서 책임감도 커졌고, 어쩌면 잃을까 봐 걱정하게 되었다.그런 소유는 안정감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그리고 문득 깨달았다.많이 가진다는 건 반드시 행복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는 무의식적인 소비가 있었다. 나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쇼핑을 했다. 잠시라도 위안이 필요할 때 손쉽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 하지만 그것은 단기적인 진통제에 불과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내 삶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힘들어질수록 물건은 늘어났고, 물건이 늘어날수록 나는 더 피로해졌다. 일종의 악순환이었다.
또한 타인의 기준이 내 삶에 너무 많이 개입되어 있었다. 광고, 인플루언서, SNS 속 수많은 자극들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가리는 장막이 되었다. 내가 갖고 싶은 물건인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물건인지 그 경계가 점점 흐려졌다. 그렇게 소유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었고, 나는 내면이 아닌 겉모습으로 나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갖는 것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많이 가지기보다 정말 필요한 것만 가지는 삶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그리고 그 실험은 예상보다 많은 자유를 나에게 선물했다.
2.덜어내는 연습은 곧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비우기 시작했을 때, 처음엔 물건을 정리하는 단순한 작업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건 단순한 정리를 넘어선 일이었다.하나를 덜어내려면 반드시 나 자신에게 물어야 했다.이건 왜 가지고 있지?, 이걸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이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지하고 되물어본다
예를 들어,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옷은 3년 넘게 입지 않았지만 버릴 수 없었다.그 옷은 특정 시기의 나를 상징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지금의 나는 입지 않지만, 그 시절의 내가 좋아했던 것.그렇게 나는 물건을 통해 과거의 나와 대화하게 되었고, 그 대화 속에서 조금씩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을 했다.
또 어떤 책은 언젠가 읽어야지 하며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고, 몇 년간 펼치지 않았다.그 책을 비워내며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무언가를 계속 쌓아두는 건 때로는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일 수 있다.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었고, 미래에 대한 지나친 준비는 현재를 침식시키고 있었다.
또한 덜어내는 과정에서는 죄책감과 마주하는 일도 많았다. 과거에 비싸게 주고 샀던 물건, 한 번도 쓰지 않은 채 방치된 물건들. 이걸 버리는 건 낭비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물건들이 내 일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이미 역할은 끝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죄책감을 마주하면서도, 물건을 사는 선택'이 아닌 어떤 감정을 위해 소비했는가를 복기하게 되었다.
이처럼 덜어내는 행위는 매번 나와 대면하는 일이었다.단순히 물건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 불안한 나, 미뤄둔 감정들과 마주하는 작업이었다.그래서 비우는 시간은 항상 조용하고도 깊은 시간이 되었고, 그렇게 나 자신을 조금씩 회복해 나갔다.
3.결국 적게 가지는 삶은 더 풍요로운 삶이었다
물건을 덜어낸 이후, 내 주변은 점점 단순해졌지만, 삶은 점점 더 풍성해졌다.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집에 머무는 시간이 편안해졌다는 것이다.예전엔 집에 있어도 늘 불편했다.무언가를 정리해야 할 것 같고, 치워야 할 것이 보였다.하지만 필요한 것만 남긴 공간은 그런 압박감이 사라졌다.그 안에서 책을 읽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조용히 생각할 수 있었다.물건을 줄이니 생각할 여유가 생겼고, 여유가 생기니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또한 소비 습관도 자연스럽게 달라졌다.전에는 충동적으로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곧장 구매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잠시 멈추게 된다.이게 정말 나에게 필요한걸까 단지 기분 전환을 위한 소비는 아닌가 이 물건이 내 삶을 더 좋게 만들까?그 질문들은 소비를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선택으로 바꾸어 주었고, 그 선택은 나를 더욱 자유롭게 만들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변화했다.무조건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적지만 진정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되었다.불필요한 만남을 줄이니 감정의 낭비가 줄었고, 더 자주, 더 깊이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만족감이 생겼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철학은 나의 일상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시각까지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쌓고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했지만,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살자는 태도로 바뀌었다. 미래는 불확실하지만, 현재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미니멀리즘이 일깨워주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덜 가지는 것은 결코 부족한 삶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에 가까워지는 삶이라는 것을. 더 적게 가지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살아갈 수 있었다.그리고 지금도 그 길 위에 서 있다.매일 조금씩 더 덜어내고,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발견해가는 중이다.